![]() | 북한의 역사 1 - ![]() 김성보 지음, 역사문제연구소 기획/역사비평사 |
작년 북한은 김정일이 사망하고 김정은체제가 들어서는 격변을 겪었다. 이러한 사건은 남한사회뿐 아니라 전세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새로 수립될 김정은체제가 과연 얼마나 안정적일지, 기존의 선군정치의 기조는 그대로 유지될지, 혹여 북한이 붕괴나 하지 않을지 남한언론은 연일 무수한 기사들을 쏟아냈다. 특히 김정일이 사망하는 시점은, 이미 이른바 중동의 민주화로 전세계 ‘독재’국가들이 민주주의에 무너져 내려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욱 북한체제 내에 어떤 파열음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누구하 하기 십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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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북한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더욱 강력한 선군정치를 선포하며 단단하게 똘똘 뭉쳐 있다. 이러한 북한의 폐쇄적이고 강력한 ‘일인지배체제’가 어떻게 구축될 수 있었을까? 북한 지도부는 원래부터 세습제를 통해 강력한 지배체제를 구축하기를 원했을까? 악한 지도부들 일부가, 북한주민이라는 선한 존재들을 착취하고 고혈을 빼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애초부터 이런 체제를 구상해왔던 것일까? 그렇게 힘든 경제 상황에서도 어떻게 북한은 자신의 체제를 견고하게 유지해낼 수 있었을까? 그런데 북한은 언제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떼나 쓰는’ 그런 불합리한 대상으로 치부하는 이상 이러한 의문은 풀리지 않을 것이며, 북한은 가장 가깝고도 가장 먼나라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문을 꼭 닫아놓고 바깥에 나오지 않는 이웃을 그냥 모른척 하고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웃이 바로 아파트 아랫집이고 그 집에서 화재 같은 큰 사태가 발생하면 불가피하게 우리집도 엮여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래도 모른척 할 것인가? 그렇다고 그들이 문을 닫고 안 열어준다고 경찰을 불러 문을 강제로 여는 것만이 바람직한 해결책일까? 어쩌면 문을 따는 순가 이웃은 더 극단적인 행동을 할지 모른다.
결국 남은 것은 이웃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이다. 그런데 만나려는 사람에 대해 전혀 아무것도 모르고, 외려 그들을 ‘떼쓰는 아이로만’ 생각할 경우 과연 어느 것 하나 해결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그가 누구의 자식이고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으며 어떤 성장과정을 겪었는지를 아는 것일지 모른다. 북한의 역사, 그것도 지금의 김정은체제를 만들어낸 직접적 출발점인 1945년 해방 이후의 북한의 현대사를 우리는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금 알아야만 한다.
그런데 시중에는 북한의 현대사를 객관적으로 다룬 책이 거의 전무하다. 6.25전쟁과 레드콤플렉스가 만연한 남한사회에서, 어쩌면 북한 역사 자체를 그대로 서술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현 한국 현대사의 북한 연구 성과를 종합하고 최대한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하여 1960년대 김일성 사망시까지 다룬 이 책의 출간은 매우 반가웠다.
특히해방 이후 북한사회는 지금 우리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역동적인 사회였음을 ‘인민민주주의’라는 개념으로 저자는 잘 보여준다. 북한 사회주의 체제 형성기를 획일화와 다원화의 두가지 힘이 당시에는 공존했으며 6.25전까지는 다원화의 힘이 더 강력하게 북한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다원화의 ‘인민민주주의’ 단계를 좀더 지속적으로 그것도 철저하게 겪었다면, 지금의 북한사회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인민민주주의라는 다원화의 경험은 매우 짧을 수밖에 없었다. 세계 최강국 미국과 연합한 남한과의 전쟁, 이후 계속되는 냉전 하에서 지속되는 외적 불안은 내적 안정화를 더욱 급속하게 추동했고, 결국 획일화의 힘이 더욱 강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6.25전쟁 이후 1950년대 북한은 ‘농업 협동화’와 ‘사회주의 개조’ 1956년 8월 전원회의 사건을 거치면서 급격한 획일적 권력구조를 구축했다.
물론 외부의 위험이 강력하다고 반드시 내부가 획일적인 세습적 권력구조를 가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상당히 열린, 다원화된 출발점을 보였던 북한의 현대사가 결국은 획일화되고 닫힌 사회로 나아간 데는 분명 냉전과 미국의 세계지배라는 세계사와 따로 놓고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다. 만약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경쟁에서 지금의 미국처럼 소련이 전세계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면, 북한이 굳이 폐쇄적일 필요가 있을까?
어쨌든 북한은 고작 60년 전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열린 사회였다. 그런 북한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들이 폐쇄적인 세습국가로 현재 남게 된 그 일련의 과정을 이해할 때라야 비로소 북한이라는 상대방의 행동논리를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저자가 서문에서 명확히 강조했듯이, “북한의 체제 형성 과정에서 존재했던 다양한 면모들은 여전히 잠재되어” 있을지 모르며 “필요에 따라 겉으로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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