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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청춘’은 아프고 위로받아야 할까? 글쓰기_인문

김난도 『아프니까 청춘이다: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 쌤앤파커스 2010.


왜 ‘청춘’은 아프고 위로받아야 할까?

우연히 학내 게시판인 <스누라이프>에서 김난도 책에 대한 논쟁이 제기된 걸 보았다. 작성자는 2005년 스탠포드 대학졸업식에서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삶을 그대로 녹아낸 연설을 언급하면서, 김난도 ‘책’을 읽었을 때의 공허함의 이유를 잡스의 개인의 삶과 경험에서 우러난 명연설을 본 후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는 논지의 글이었다. 이 글에 무수한 댓글이 달렸는데, 어떤 이는 책에서 보여지는 김난도의 따뜻하고, 다정다감한 이미지는 수업과 책에서만 보이는 것일 뿐 실제 대학교수로서의 성품은 이와 멀다며 ‘인신공격성’ 댓글이 달리기까지 한 반면, 어떤 이는 서울대생들은 인기있는 누군가를 존경하지 못하고 ‘비판’만 일삼는다며 따스한 저자의 격려가 왜 이렇게 여기서 비판받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반박도 있었다.

또한 우연히 수업시간에 요즘은 청춘이 돈이 되는 세상이며, 왜 청춘은 위로받아야 하는 존재여야 하는지에 대한 짧은 논평은 더욱더 이 책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했다. 사실 베스트셀러를 손에 잡았다가 허망하고 뻔한 내용에 실망을 수차례 해본 경험이 있어 이 책을 읽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 올해 상반기에 가장 잘 팔린 책 중 하나이며 출판사의 광고문구대가 정확할지는 모르지만 작년 12월에 출간되어 “한국출판사상 최단기 100만부 돌파했으며, 중국·일본·이탈리아 등 7개국에까지 수출하는 책으로 올해 한국에서 ‘청춘 신드롬’”을 일으켰다고 하니 분면 2011년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책이 아닐까 하여 읽기로 결심했다.

책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하여, 도서관에서 대출하고자 하여도 이미 모두 예약이 불가능할 정도로 예약이 밀려 있어서 결국 도서관에 전시된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읽은 듯 책은 너덜너덜해진 저자 기증도서를 읽었다. 놀랍게도 도서관에서 1시간 만에 다 읽을 정도로 매우 흡입력있게 읽혔을 뿐 아니라, 진솔한 자신의 삶과 20대가 되어가는 자식을 향한 아버지로서의 ‘따뜻함’이 묻어나는 책이었다. 특히 취업을 위한 테그닉을 자세히 서술하며 성공을 위한 처세술을 강조하는 기존의 ‘자기계발서’를 비판할 뿐 아니라 안정적인 공기업이나 초봉이 높은 직업에만 현혹되지 말고 “일을 하는 즐거움을 기준으로 미래를 설계하라”(59면)는 따끔한 충고 또한 잊지 않는다. 청춘을 ‘투자 동아리’ 같은 데 들어가서 벌써부터 재테크에 빠지지 말 것이며, 자신의 눈동자에 답이 있다며 원하는 것을 찾아 치열하게 노력하기를 조언한다. 이렇게 “너무 영리하게 코앞에 있는 단 1%의 이익을 좇는 트레이더가 아니라, 자신의 열정에 가능성을 묻어놓고 우직하게 기다릴 줄 아는 투자가였으면 좋겠다”(11면)며 기존의 맹목적인 자기계발서와 분명한 거리를 둔다.

물론 저자 스스로 머리말에서 지적하듯이, 20대 중 대학생에 특화된 설명이 있고 더군다나 대기업과 고시를 선택할 정도의 ‘여유’를 지닌 한국내 소수 상위 학벌에만 한정된 조언이라는 아쉬움이 존재한다. 또한 자신의 열정을 위해 힘든 생활도 이겨내라며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저자의 역경이라는 것이, 미국유학생활에서 학비를 조달하는 데 다행히 그곳에서도 ‘과외’가 가능했던 자신의 특권이 꽤 ‘자연스럽게’ 서술되어 당혹스럽기도 했다. 게다가 책의 결론은 결국 “치열한 경쟁을 뚫기 위해서는 그저 그런 스펙이 아니라 확실한 자기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며 재테크보다 자신의 열정에 집중하라는 조언이 결국은 “그대만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더욱 치열해진 청년실업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어쩌면 또다른 더욱 강력한 ‘스펙’을 갖출 것을 제안한다는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기존의 돈에만 몰두하라는 물신주의적 ‘자기계발서’의 직설보다는 더욱 세련되었고 감성적이며 현실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야 비로소 성공이 다가올 수 있다는 주장까지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을 듯하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처럼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대중소설도 아닌 에쎄이가 출간된 지 1년도 되지 않아 최단기간에 100만부가 팔렸다는 것은 그만큼 지금-여기의 20대는 외롭고 이 책에서 나름의 ‘위로’를 받는다고 할 수 있다. 거꾸로 그만큼 한국사회에서 20대들이 고립되어 있고, 취업이 어려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리라.

그렇다. 이러한 따뜻한 에쎄이가 올해 한국사회를 휩쓴 것은 바로 ‘인생 앞에 홀로 선’ 20대를 따뜻하게 보듬어주지 못한 기성세대의 반성을 촉구하며, 더욱 따스한 눈빛으로 20대를 보듬어주기를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청춘들이 바라고 있는 것이다...

라고 글을 끝내기에 뒷맛이 개운치 않다. 이렇게 20대를 보듬어주고 위로해준 저자의 ‘선의’를 추어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왜 자꾸 20대를 위로하려고 하는 것일까? 언제부터 20대는 이렇게 위로받아야 하는 ‘청춘’이 되었을까? 사실 한국사에서 젊은이는 ‘청춘(靑春)’이기에 앞서 ‘청년(靑年)’이었다. 인생의 종착역에 이르러 푸르른 봄날을 회상하는 아름다운 청춘이거나 자아의 봄날을 뜻하는 개인적 의미의 청춘으로 ‘젊은세대’가 호명되기보다, 세상을 변혁시키는 변화의 주체로서 ‘청년’은 존재했었다. 3.1운동 때의 중고생과 4.19와 6.10항쟁 때 민주주의를 위해 변혁의 맨 앞에 섰던 존재가 바로 대학생 혹은 청년이었다. 이들은 세대로서 존재했으며 그 세대들이 지금의 386세대 지금은 486세대인 것이다. 이렇게 시대를 바꾸어온 변혁의 주체들은 위로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물론 70~80년대는 한국경제가 성장기였기 때문에 취업의 걱정이 부재했으며 대학생 간의 지금같은 치열한 스펙경쟁이 불필요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의 대학생들은 청년이라는 세대적 응집력을 가지고 세계를 항해 몸을 던졌고 기성세대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세상을 바꿔나갔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대학생은 인생 앞에 홀로 선 고독한 청춘이 되어버렸다. 기성세대는 청춘을 향해 위로의 말을 건네주는 한국사회의 ‘주인’이 되었고 대학생들은 그들의 위로와 관심을 목매여 바라는 ‘애완동물’이 되어버렸다. 애견숍의 투명한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손바닥만한 공간에 진열된 조그마한 강아지들처럼. 마치 자신을 ‘선택’해달라는 듯이 투명한 유리창 앞에 서 있는 ‘미래의 주인’을 향해 애처로운 눈빛을 던진다. 그들의 따사로운 쓰다듬음에 애완견은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간다. 애완숍의 조그마한 진열장에 청춘들은 각각 갇혀 고독하게 주인의 선택과 위로를 기대한다. 그들은 옆방의 같은 청춘들을 바라보지 못하며 ‘연대’하여 이 애견숍을 탈출한 꿈을 꾸지도 못한다.

그렇게 이제까지 변혁의 주체이던 청년은 애견숍에 진열된 외로운 ‘청춘’이 되어버렸다. 수많은 청춘들이 위로받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지금보다, 연대하여 ‘짱돌’을 세상을 날리라는 메시지를 던진 우석훈의 『88만원세대』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몇년 전이 그리워지는 쓸쓸한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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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삐리삐릿 2011/10/31 16:06 # 답글

    잘 읽고 갑니다. 서점에 가게되면 읽어봐야겠어요~
  • Limccy 2011/10/31 22:20 # 답글

    전 좀 그렇더라구요.. 책을 읽기전에 배경부터 봐버린지라 흥미가 전혀 가질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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